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이와이 슌지 감독, 첫사랑을 떠올리는 오겡끼데스까의 "러브레터"

<사랑했던 연인 후지이 이츠키가 죽은 지 3년. 그의 약혼녀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 분)는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추모식 날, 히로코는 그의 중학교 졸업 앨범에서 지금은 사라진 그의 옛 주소를 발견하고 그리운 마음에 안부를 묻는 편지를 띄운다.

하지만 며칠 후, 후지이 이츠키로부터 거짓말처럼 답장이 날아오고, 히로코는 편지를 보낸 그 사람이 그와 같은 이름을 지닌 여자이며 그의 중학교 동창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 네, 여기까지가 네이버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제가 이 영화를 본 것은 아마 90년대 말이거나 2000년초가 아닐까, 합니다. 일본에서는 1995년에 개봉되었답니다만,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이와이 슌지(岩井俊二, lwai Shunji) 감독을 모르던 때라 별 기대를 안 하고 봤습니다.

네, 첫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는 참, 많습니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아기자기하고 달콤하고 가슴 아프거나 아련하거나 감정이입이 심해서 영화적인 완성도를 따져보지는 않죠?

저는 이와이 슌지 감독 자신이 직접 각본까지 쓰고 직접 연출한 이 영화, 영상미가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훌륭한 영화였다고 기억합니다. 글쎄… 저는 오히려 이 영화 뒤에 나온 그의 영화 <4월 이야기>가 더 좋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어떻든 영화적인 구성이나 짜임새? 영화적인 복선을 잘 깔았다? 라고 생각되는 영화였다고 봅니다. 우선 이영화의 키워드를 나름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1) 설경&폭설

영화 도입부에 제법 롱테이크(long take)로 시작되면서부터 설경과 남자 주인공이 조난당한 설산풍경이 있었고…

폭설이 내려 구급차도 못 오는 시골에서 여주인공 후지이 이츠키가 감기로 거의 사경에 이르는 장면과 와타나베 히로코가 남자 이츠키가 조난당한 그 산을 찾아간 장면과 서로 연결됩니다. (저는 여자 이츠키가 감기로 사경을 헤매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첫사랑의 느낌과 느낌으로는 포근해 보이지만 결국은 차가운 성질을 갖고 있는 눈과의 대비에서 감독이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가 숨어있다?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2) 동명이인과 1인2역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의 남녀중학생을 하필이면 같은 반으로 설정하여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영화나 소설에서 너무나 자주 나오는 이 <우연>이라는 설정은 참 낯간지럽죠?

첫사랑 이야기라면 그저 둘의 만남은 어떤 설정을 하여도 무난할 텐데 굳이 동명이인을 배치한 것은 우연히 같은 반으로 만났다는 설정으로부터 교묘하게 비켜나도록 한 것이죠?

빤한 스토리로 흘러갈 수도 있었는데 관객들은 동명이인의 남녀라는 설정의 함정에 빠져버리는 것이죠.

후지이 이츠키와 와타나베 히로코역을 나카야마 미호가 연기했는데 첫사랑을 잊지 못한 남자가 쌍둥이처럼 똑같은 히로코에게 첫눈에 반한 걸로 설정했는데 이도 참 빤한 것임에도 관객들의 몰입을 이끄는 배치?

대출한 적이 없는 책 뒤의 대출카드마다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쓰고 그걸 이츠키에게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나중에 후배들이 후지이 이츠키 책 대출 카드를 찾아내는 놀이까지 했다는 걸 알게 되는 설정도 감독의 연출 스킬이 아닌가 합니다.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3)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과 더불어 너무나 감동적인 이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여러 번 나옵니다.

남자주인공이 처음 여주인공 이츠키로부터 책을 대여 받는 장면, 그 책을 학교 도서관에 반납해달라고 여자 이츠키 집으로 찾아오는 장면, 이츠키가 그 책을 도서관 책장에 꽂으면서(이때, 대여카드의 뒷면을 봤더라면 이들의 사랑이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졌을 수도…)

마지막엔 후배들이 그 책을 들고 이츠키를 찾아와서 대여카드의 뒤에 남자 이츠키가 그린 여자 이츠키의 초상화를 알려주는데… 이것이 라스트 씬이 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사랑을 ‘그 사람을 소유하려는 고통스럽고도 미친 욕망’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감독은 괴짜소년 이츠키를 통해서 성장통을 겪는 청춘들에게 마르셀 푸르스트의 얘기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요?

 

4) 추도식과 장례식, 얼음구덩이의 잠자리 죽음

대다수의 영화나 소설들이 주인공의 죽음을 뒤로 배치하고 앞부분에 그 죽음을 암시하는 복선을 깔고 있는데 이 영화는 도입부부터 이미 주인공의 3주년 추도식이 나오고 중간부분에는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폐렴으로 사망한… 장례식 장면을 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장례가 끝나고 여주인공 이츠키의 집으로 남자 이츠키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책을 반납해달라며 찾아오는데 그 때 ‘아버지의 상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이 장면에서 참, 대단한 복선을 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책의 대여카드 뒷면 이츠키의 초상화를 관객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고 그 초상화의 존재로 인해 남자 이츠키의 첫사랑은 여자 이츠키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여자 이츠키 역시 오래 전 학창시절의 고약한 이츠키가 자신을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감독은 그 장면을 라스트 씬에 배치한 것입니다.

또한, 남자 이츠키가 자신의 집으로 까지 찾아와 책을 반납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에서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감동해하는 표정을 잠시 잡아주는 배치와 함께 얼음 구덩이의 잠자리의 주검을 배치하는데… 이 역시도 감독의 계획된 영화언어가 아닐까?

좋은 영화는 한 커트도 쓸데없는 장면은 없습니다.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5) 카메라 워킹, 음악

감독은 아주 영상적으로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장면에는 롱테이크로… 롱샷이나 풀샷이나 정지화면을 배치하고, 스토리로 몰입을 시키는 장면은 거의 데모찌(핸드헬드 촬영기법) 촬영으로 영상적인 대비를 시켰습니다.

처음엔 저도 스테디 캠 촬영이 아닌가 했지만 촬영기사가 어깨에 걸치거나 양손으로 들고 찍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저도 젊은 시절 오랫동안 CF 감독 일을 해봐서 알고 있지만… 데모찌 핸드헬드 촬영은 포커스를 피사체에 맞출 수 없는 촬영기법이라 화면의 깊이감이 문제일 텐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화면의 극적인 대비를 통한 관객의 시점 몰입을 유도한 스킬이 아닌가?

아울러 음악도 카메라 워킹과 마찬가지로 적재적소에 아주 훌륭하게 잘 받쳐주면서 역시 강약의 주제설정으로 대비효과를 가져오는 배치를 했던 것 같습니다.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6) 맺음말, 명장면?

아무래도 모든 사람들이 러브레터의 명장면으로는 눈밭 위에서 ‘오겡끼데스까~~~~아타시와 겡끼데스~~~’하며 외치는 장면으로 꼽을 텐데요?

저도 일본에 자주 왔다 갔다 했고 몇 개월짜리 연수도 가봐서 일본어 조금 아는데 오겡끼데스까는 건강하죠? 잘 지내나요~ 이런 뜻이고 ‘아타시와 겡끼데스’는 원래는 ‘와타시와 겡끼데스’로 해야 되는데 이는 여자들이 쓰는 일종의 애교투? 이런 거죠?

저는 그 보다도 라스트 씬인… 후배들이 들고 온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책 대출카드 뒤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죽은 이츠키의 첫사랑이 바로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 장면이?

1인2역의 나카야마 미호의 연기가 정말 압권이죠?

그 바로 앞 씬에서 ‘가슴 아파서 이 편지는 보내지 못 하겠습니다’ 라던 마지막 편지글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 곳곳에 배치한 절제미가 이 영화를 좋은 영화로 평가받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림도 시도 뭔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절제미가 필요하죠?

 

– 이상 순전히 저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정리해본 것이고요~ 아주 잘 만들어진 첫사랑의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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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岩井俊二, lwai Shunji)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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