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 놓지않았다!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 놓지않았다!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빈센트는 심오한 창작의 세계로 스스로를 이끌며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1889년 5월. 프랑스 남부의 따뜻한 햇빛이 넘치는 아를(Arles)을 떠나, 서늘하고 조용한 생레미(Saint-Rémy)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아를에서의 삶은 그의 예술적 열정을 불타오르게 했지만, 동시에 정신적 고통도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죠.

이곳에서 그는 발작과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작품에 몰두하다가, 결국 더는 견디지 못하고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생레미에 위치한 생 폴 드 모졸(Saint-Paul-de-Mausole) 정신병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생레미에서의 삶도 빈센트에게 그리 평온한 시간만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심오하고 비밀스러운 창작의 세계로 스스로를 이끌며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생레미의 정신병원 생 폴 드 모졸

■ 빈센트 반 고흐, 생레미로 향한 이유와 배경

아를에서의 생활은 빈센트에게 있어 색과 빛의 실험장과도 같았습니다.

황홀한 노란빛과 붉은 태양, 그리고 푸르른 대지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색채 언어를 탐구하며 ‘노란 집’을 작업실 삼아 매일 붓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뜨거운 열정 뒤에는 고통스러운 정신적 압박과 외로움이 감돌았어요.

 

특히나 예술적 동지이자 친구였던 폴 고갱과의 관계가 틀어지며, 빈센트는 점차 불안과 발작에 시달리기 시작했죠.

고갱과의 다툼 끝에 충동적으로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사건은 고흐의 불안정한 상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빈센트의 상태는 더 악화되었고, 결국 동생 테오는 그가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회복과 창작을 이어갈 수 있도록 생레미의 정신병원으로 그를 보냈습니다.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생레미의 정신병원 생 폴 드 모졸 빈센트 방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생레미의 정신병원 생 폴 드 모졸 복도 및 입구

■ 생레미의 정신병원 생활

▶ 정신병원의 일상

생레미의 정신병원 생 폴 드 모졸 Saint Paul-de-Mausole은 4 세기 초반부터 영적이고 치유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Glanum의 로마 지대 옆에 세워졌습니다.

중세 역사 동안 생 폴 드 모졸은 수도원이 되었고, 나중에 정신 병원 건물이 단지에 추가되었습니다.

생 폴 드 모졸은 단기 정신과 치료를 위한 정신 건강 기관으로 아직도 있습니다.

단지의 일부는 반 고흐 (Van Gogh)의 방을 재현하는 것을 포함하여 투어 할 수 있는 일반 대중을 위해 열려 있습니다.

 

넓은 정원과 조용한 복도, 그리고 푸른 언덕이 병원을 둘러싸고 있었죠. 빈센트 반 고흐는 병원의 정원에서 자연을 느끼며 산책을 하고, 풍경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일어나 병원 생활의 규칙을 따르며 생활했지만, 그 속에서도 빈센트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자신의 내면을 그림으로 표현해 나갔습니다.

그의 작업실은 병원 내부의 작은 방이었지만, 그 안에서 고흐는 세상과 분리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 있어 이 병원 생활은 고독과 외로움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자신의 내면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었죠.

사람들과의 소통이 거의 단절된 상태에서 그는 오롯이 자기 자신과 자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병원 내에서 한정된 활동을 하면서도 빈센트는 자신만의 창작 활동에 몰두하며, 잔잔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끊임없는 예술적 열망을 작품으로 쏟아내었습니다.

 

빈센트는 1889 년 5 월 8 일 아를을 떠나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도착하여 생 폴 드 모졸 에 들어갔습니다.

52 주간의 기간 동안, 그는 빛의 품질과 그 지역을 둘러싼 아름다운 풍경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 발작과 고통의 반복

생레미에서의 생활이 언제나 평화롭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정신병원에서조차 빈센트는 종종 발작에 시달렸고, 그 고통은 그의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소모시켰습니다.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빈센트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듯한 혼란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해요.

그 고통은 그를 무력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는 그 절망과 혼돈의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힘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작품 중에서 발작 후유증을 겪으며 창조한 ‘별이 빛나는 밤’은,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했던 그의 내면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빈센트는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붓을 놓지 않고, 자신의 고통을 예술적 언어로 재탄생시키려 했습니다.

 

생레미에서의 그는 오히려 그 고통과 혼돈을 통해 더욱 진솔하고 강렬한 작품을 완성해 나간 것입니다.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사이프러스가_있는_밀밭1889_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사이프러스_나무가_있는_녹색의_밀밭_1889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사이프러스가_있는_밀밭_1889

■ 생레미에서 탄생한 걸작들

생레미 정신병원에서의 시간 동안 빈센트 반 고흐는 생 폴 드 모졸 교회의 풍경을 포함하여 100점이 넘는 그림과 143점의 유화를 그렸습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그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반영하듯 더욱 강렬하고 표현적이며, 자연에 대한 심오한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그린 ‘사이프러스 나무’, ‘올리브 나무’, ‘별이 빛나는 밤’ 같은 작품들은 그가 바라본 생레미의 자연 풍경과 하늘을 독특한 시선으로 포착하여 화폭에 담아낸 것이죠.

 

빈센트는 나무나 하늘, 별과 같이 자연의 요소들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며,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작품을 창조했습니다.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별이 빛나는 밤 1889
▶ 별이 빛나는 밤

‘별이 빛나는 밤’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생레미에서의 고통과 희망이 잘 담겨 있는 걸작으로 꼽힙니다.

깊은 밤하늘을 휘감는 듯한 별빛과 빛나는 소용돌이는, 마치 고흐가 자신의 영혼을 하늘로 띄워 보내는 듯한 느낌을 주죠.

 

이 작품에서 빈센트는 별빛을 통해 끝없는 고독과 고통을 품은 채로도 여전히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별빛 속에서 끓어오르는 소용돌이는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혼돈, 그리고 그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찾으려는 그의 절실한 염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올리브_나무_1889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사이프러스와 두여인 1889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사이프러스_1889
▶ 사이프러스와 올리브 나무

빈센트 반 고흐는 생레미의 풍경 속에서 볼 수 있었던 사이프러스와 올리브 나무들을 여러 번 그렸습니다.

이 나무들은 그에게 있어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닌, 마치 생명의 끈을 상징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사이프러스는 하늘로 솟아오르듯 곧게 뻗은 모습으로 고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빈센트 반 고흐는 그 강렬한 형태와 생명력을 그의 화폭 속에 담아냈습니다.

 

그의 붓 끝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한 나무들은 그의 생명에 대한 갈망과 치유의 의지를 담고 있는 듯 보입니다.

올리브 나무 역시 빈센트가 생레미에서 경험한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감상을 반영한 작품입니다.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올리브 나무 1889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올리브 과수원 풍경 1889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라일락 1889
▶ 테오에게 쓴 편지 - 올리브 나무들은...

“오리브 나무들은 아주 독특해서 그 색을 포착하기 위해 고전하고 있다.

그것은 어떨 대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은색이었다가,

어떨 때는 초록빛과 청동색을 띤 은색이어서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혹은 오렌지색에서부터 희미하게 붉은 황토색으로까지 보이는

대지 위로 흰빛을 발한단다.“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생폴 병원 침실 1889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밀레의_씨뿌리는_농부와_고흐_모사품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밀레의_오후의_낮잠과_고흐의_모사품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밀레의_첫걸음마 고흐의 첫걸음마 모사품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밀레의_짚단을_자르는_여인과_고흐_모사품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밀레의_이삭줍기와_고흐의_모사품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밀레의_하루일과_끝과_고흐의_모사품

■ 발작을 일으켜 외부출입금지

빈센트는 발작을 일으켜 외부출입금지 때는 자신의 방 창문 밖으로 쉽게 잘 보이는 밀밭 풍경을 수많은 스케치와 함께 그렸습니다.

그리고 바르비종 파 화가인 밀레를 비롯한 오노레 도미에, 외젠 들라크루아 등 선배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사하기도 했답니다.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아이리스1889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생폴 병원 간병인 책임자 트라부 부부의 초상 1889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닥터 레이의 초상 1889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생폴병원_정원의_소나무와_민들레_1889

■ 생레미에서 남긴 유산과 의미

생레미에서 빈센트 반 고흐는 단순히 고통을 겪는 환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색채와 선을 통해 내면의 소리와 감정을 표현하며, 예술을 통해 자신의 삶을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빈센트의 작품들은 그가 견뎌낸 고통의 흔적이자, 그가 사랑했던 자연과의 교감을 담은 결과물입니다.

 

생레미의 시간은 빈센트에게 있어 지울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그 속에서 피어난 그의 예술은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생레미에서의 시간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만드는 시기였으며, 그의 예술은 고통 속에서도 피어나는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결국, 생레미에서의 삶은 빈센트 반 고흐에게 있어 예술적 성취와 고통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예술적 영감을 잃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갔지만, 동시에 자신을 갉아먹는 고통을 견뎌야 했죠.

 

결국 1890년 5월, 고흐는 생레미를 떠나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로 향하게 됩니다.

 

생레미에서의 시간은 그의 삶과 예술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가 창조한 작품들은 이후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는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생폴병원_정원의_소나무와_사람_1889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생폴병원_정원의_소나무와_사람_1889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아이리스 1890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테오의 아들, 태어난 조카를 위한 그림 아몬드 나무 1890. 2.
빈센트 고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붓을 놓지않았다!
자화상 188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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