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러브스토리는 미술사에서 가장 강렬하면서도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역사상 가장 잘 생긴 화가라고 알려진 이탈리아 출신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

아름답고 청순한 처녀 잔느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 1898-1920)…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1884년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왜소했답니다.

조각을 하고 싶었으나 체력적으로 힘들고, 또한 지나치게 비싼 재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그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모딜리아니는 피렌체 미술학교 베니스 미술학교 등을 거쳐, 스물두살에 파리에 정착했습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만남

 

1917년의 파리.

그 시기 파리는 예술의 도시였고,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의 열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파리의 미술학교에서 한 여학생을 만나게 됩니다.

미술학도를 꿈꾸던 파리의 로마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태어난 재능있던 처녀, 쟌느 에뷔테른.

둘은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되는데, 처음부터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꼈다고 합니다.

잔느는 모딜리아니의 열정적이면서도 동시에 고독한 영혼에 매료되었고, 모딜리아니는 잔느의 순수하면서도 깊은 내면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둘은 바로 깊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평생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합니다.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어 드릴게요.”

그녀는 이렇게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사랑은 단순히 낭만적인 관계를 넘어, 서로의 삶과 예술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모딜리아니의 독특한 초상화 중 많은 부분이 잔느 에뷔테른을 모델로 삼았으며, 그들의 사랑은 그들의 예술 작품에 깊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잔느 에뷔테른

2. 사랑과 예술의 열정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사랑은 그저 뜨거운 감정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서로의 예술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모딜리아니는 잔느의 얼굴을 수많은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그녀의 길고 우아한 목선, 신비로운 눈빛, 그리고 그 특유의 슬픔이 깃든 표정은 그의 작품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는 그녀를 그릴 때마다 단순한 모델이 아닌, 자신의 영혼의 일부를 담아내는 듯한 깊은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잔느 또한 모딜리아니의 예술 세계에 깊이 동화되었습니다.

그녀는 그의 작품에 영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모딜리아니의 고된 생활 속에서 그를 지지하고 격려해 주는 존재였습니다.

 

당시 모딜리아니는 폐결핵으로 인해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느는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의 고통을 함께 견디며, 그의 예술을 위한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특히,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느의 초상화들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그저 평범한 연인이 아니라, 서로의 인생을 함께 살아가며 희생하고 보듬어주는 깊은 유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그림들을 보면, 마치 그들의 사랑이 캔버스 위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잔느의 깊고 멍한 눈빛은 모딜리아니와 함께한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하면서도 슬펐는지, 말없이 이야기해 주는 듯합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뷔테른 1918

3. 비극적인 스토리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어 드릴게요.”

그녀는 이렇게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딜리아니의 부모는 유태인으로 스스로 유태인임을 자랑스러워했고 잔느의 집안은 파리의 로마 카톨릭 집안이었습니다.

사랑했으나 부모들의 반대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잔느는 사랑하는 그를 따랐습니다.

쟌느는 자신의 재능도 꿈도 포기한 채 사랑하는 화가 모딜리아니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기로 다짐합니다.

모딜리아니는 그런 쟌느에게서 영혼의 교감을 느끼며 그녀를 그렸습니다. 쟌느는 사랑하는 그의 모델이 되었고 모딜리아니는 사랑하는 그녀를 그렸습니다.

쟌느는 그때마다 너무 행복해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천국에 가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어 드릴게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잔느 에뷔테른 1918

하지만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모딜리아니는1920년 1월 24일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되는 자화상을 완성시키고 피를 토한 채 쓰러졌습니다.

그의 나이 35세, 너무나 젊은 나이에 떠나버린 겁니다.

 

그 옆에는 만삭의 잔느가 웅크리고 앉아 죽어가는 모딜리아니를 지켜보고만 있었답니다.

그녀 자신이 모딜리아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의 침대 주변에는 몇 개의 빈 포도주 병과 반쯤 얼어버린 정어리 통조림이 뒹굴고 있었답니다.

 

친구들이 달려와 병원으로 옮기던 도중 손쓸 겨를도 없이 모딜리아니는 눈을 감습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잔느 에뷔테른 배경에 문이 있는 풍경 1919

숨진 모딜리아니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던 잔느 에뷔테른.

거의 실신한 잔느를 부모님은 집으로 데려오지만, 이틀 후 쟌느는 임신 8개월의 몸으로 친정 집 5층에서 몸을 던져 사랑했던 모딜리아니를 따라 갑니다.

당시 잔느 에뷔테른의 나이 22살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약속대로 천국에 가서도 사랑하는 모딜리아니의 ‘얼굴이 길어 슬픈 여인 잔느 에뷔테른’이 되었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당시 파리 예술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동시에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하고 헌신적이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모딜리아니 없이 살 수 없었고, 그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그와 함께 죽음을 택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비록 짧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깊고 진실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너무나도 열정적이었지만, 결국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모딜리아니와 잔느는 죽어서도 함께였습니다.

 

그들은 같은 묘지에 나란히 묻혔고, 지금도 그들의 묘비는 몽파르나스 묘지에 남아 있습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잔느 에뷔테른 초상 1918

4. 예술과 사랑은 영원히 살아남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사랑은 죽음으로 끝났지만, 그들의 예술과 사랑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느의 초상화들은 여전히 전 세계의 미술관에서 사랑받고 있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단순한 연인의 사랑을 넘어, 예술과 인생의 경계를 허물며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들이 남긴 예술과 사랑은 영원히 살아남아 우리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서도, 예술 속에서도 계속해서 울려 퍼질 것입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노란 스웨터를 입은 잔느 에뷔테른 1918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앉아있는 잔느 에뷔테른 1918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어깨를 드러낸 잔느 에뷔테른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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